자살만큼 힘들었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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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00
조회 1,070회
작성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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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본다는 무한도전도 안 봤던 제가 요즘 목요일 11시만 되면 tvN 예능 '배우학교'를 보기 위해 리모콘을 찾습니다.
연기를 못해 고민인 7명의 배우들은 '배우학교'에서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고자 박신양을 스승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박신양은 그들에게 대뜸 '연기가 왜 하고 싶지?', '연기란 무엇이지?', '너는 누구지?'를 묻습니다.
단순히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러 왔던 배우들은 질문에 대답할수록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던 그들에게 어지간히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박신양은 그 답을 스스로 깨닫게끔 하기 위해 본인을 내던져 연기에 도전해보고 실패해보고 그 과정을 온전히 느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되묻습니다. '스스로의 연기가 믿겨지냐고, 무대에서 살아있냐고.'
그리고 한 제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장수원, 왕년의 유명 아이돌이지만 이제는 어색한 로봇연기로 기억되는 배우입니다. 1, 2화에서 계속 장수원은 갑갑할 정도로 본인의 틀에 자기를 가두고 변화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급기야 2화 끝부분,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본인의 연기를 참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하지만 박신양은 오히려 '실패해도 된다.', '믿어지지 않았기에 그만 둔 솔직한 점이 마음에 든다.'는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이 말에 감정 없는 로봇만 같았던 장수원은 가슴 속에 무언가 무너져 내린 듯, 눈물을 쏟아내 버립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연기를 끝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전 숨이 멎을 뻔한 기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따뜻하고 생생한 표정의 장수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내게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그걸 끌어내준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그를 보고 저마저도 행복감에 빠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장수원에게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은 차주현 선생님과 만나기 전의 저도 장수원과 똑같이 감정을 억누르고 내 틀 안에서 고독함을 벗 삼아 살았고 제 존재를 항상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우학교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박신양에게 매료되고 만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게끔, 느끼게끔 도와주고 절 믿고 이끌어주시던 차주현 선생님과의 지난 3개월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상담받기 전, 전 살아있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아무와도 교감하지도, 소통하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고 번번이 실패하고만 마는 인간관계, 연애로 좌절감에 짓눌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모습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제 발목이 묶여있었지만 애써 과거 기억을 잊고 절 모르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곳에서는 달라질 거라는 허황된 희망과 그럴싸한 명문대학교 학벌과 꾸며낸 이미지로 만든 가면을 쓰고 절 기만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면은 무겁게 저를 짓눌렸고 가면과 절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상상 속 멋진 절 부정하는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내면의 굶주림, 채워지지 않는 욕심과 애정은 자기 계발서적을 탐닉하며 저는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 세뇌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가득한 셰임, 타인의 삶, 버드맨, 인디에어 등의 영화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등의 소설 속 저 축축한 슬픔 속에 절 적시고야 안식을 취했습니다.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지느러미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어처럼 전 멈추는 순간 죽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자살을 하면 안 돼.’ 라는 생각을 해 자살을 실행하지 않았을 뿐, 저에게 달리 생의 의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뭐든 열심히 하고 배워보고 그럼 나아지겠지!’ 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절 지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팽팽했던 끈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끊어졌습니다.
첫 만남에선 절 너무 좋아해주고 뭔가 교감이 되는 듯 했던 여자분이 두 번째 만남에서 절 말도 안 되게 차갑게 대하며 매몰차게 절 떠나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내 안의 모순과 좌절감이 쓰나미처럼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된다.’, ‘난 안 되는 놈이다.’ 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동안 절 그나마 살아오게 해왔던 미약한 것이 무너지며 희망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런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란 생각이 제 머리에 가득 찼습니다.
전 부평구청 사거리 옆 버스정류장에 앉아 몇 분간, 아니 몇 십분 간 차가운 아스팔트 찻길과 빠르게 지나가는 주황색 불빛만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목 끝까지 차올라 익사할 것만 같은 공허함 속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익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힘을 짜냈습니다. 저에게 한 번 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마치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상담센터를 찾아 평가가 좋아 보이는 한 곳에 바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 예약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전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전 제가 버스정류장에 막차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15년 10월의 어느 차가운 밤, 전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3개월의 상담 기간, 전 저를 내려놓고 차주현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말씀에 따르며 저를 찾으려 발버둥 쳤습니다. 상담 과정은 말 그대로 제가 쥐고 놓지 않으려던 가면을 내던지고 제 진짜 얼굴과 제 삶을 되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웃긴 건 ‘배우학교’에서 자신의 내면과 연기에 대한 이해 없이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러 왔던 7명의 배우들처럼 저도 상담에서 제 내면을 알려하기 보단 그저 제가 상상하던 제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러 왔던 것입니다. 저에게 삶의 방법은 절대 벗겨지는 않는 가면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제가 참 위험하고 무서운 생각을 했지만 동시에 너무 안쓰럽고 불쌍한 느낌이 듭니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생활을 병행하며 하루 종일 내 감정을 느껴 보려하고 기록하며 느껴지지 않는 감정의 빈자리를 더듬는 일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마냥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도중 제가 믿던 이들에게 끔찍한 배신도 당하고 제 방어기제를 벗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온 몸에 열이 나고 며칠 간 악몽을 꾸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였으면 결코 시도하지도 못했을 이 모든 것들의 제 뒤에는 든든하게 선생님이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하고 번민했지만 분명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 마음과 직면하게끔 가끔은 매몰차게 절 막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마치 저는 알속에 들어가 있는 새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가 바깥세상으로 나갈 충분한 힘을 기를 만큼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는 동시에 새를 가둬두고 있는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 알처럼 선생님은 제가 실패에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게 보호해주는 동시에
과제와 시련을 줘 제 힘으로 문제를 깨닫고 극복해나가게끔 하셨단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전 3개월 동안 더 건강한 멘탈과 자신감을 얻고 조금씩 제 욕망과 감정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몇 개를 이야기하자면 덕분에 그동안 절 괴롭히던 큰 트라우마와 마주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은따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졸업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지내도 불편한 마음과 함께 이 녀석들에게 성공한 모습으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담 후반부, 용기 내 대화해보자 제가 만든 오해와 상상이 대부분이었고 반에서 엄석대 마냥 대장행세를 하던 친구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친구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꾹꾹 제 마음을 눌러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과 만났습니다. 그 땐, 제 마음을 감당할 자존감이 없어 그 친구를 피하고 혼자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마음 아파했지만 지금은 제가 고시준비 중인 그 친구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그 때 표현 못했던 사랑을 애정 어린 관심이나 칭찬 같이 다른 형태로나마 표현했습니다.
아마 모르실겁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것들이 뱃속에 납덩이가 들어가 있는 것 마냥 얼마나 절 힘들고 무겁게 만들었는지. 제가 느낀 상담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수술이라기보다는 실패와 도전, 번민을 허락하는 '배우학교'에 입학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한 그윽한 눈으로 제 감정과 생각, 가능성마저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선생님과 함께 제가 가보지 못한 영역을 탐험하는 여행에 가까웠습니다.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표현도 감히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한 수레의 자기 계발서적을 읽고 호주든 유럽이든 여행 다녀오고 해도 저란 인간과 제가 가진 틀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만 직접 온 몸을 부딪쳤던 이 3개월 동안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충만하게 저를 탐구하고 인생과 인간, 여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 특별했던 경험 이후에 제 두 발로 살아갈 건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상담해주신 내용 이외에도 직업적, 사회적으로도 한걸음 나아졌고 삶은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여러분과 저만이 공유하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보신 분께서 만약 저를 직접 보셔도 절 못 알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상담 전의 저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겉모습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제 모습은 이젠 훨씬 커다랗고 자유롭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전 계속 번민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가끔은 우울하고 슬프기도 가끔은 행복하고 즐겁고 그렇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삶의 영역에서 불쑥불쑥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3개월 간 얻은 경험은 제게 남아 항상 저에게 힘을 줍니다. 제가 얻은 것은 가벼워진 짐이 아니라 보다 두터운 어깨였습니다.
연기를 못해 고민인 7명의 배우들은 '배우학교'에서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고자 박신양을 스승으로 만납니다. 그런데 박신양은 그들에게 대뜸 '연기가 왜 하고 싶지?', '연기란 무엇이지?', '너는 누구지?'를 묻습니다.
단순히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러 왔던 배우들은 질문에 대답할수록 내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내가 왜 연기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말문이 막혀버립니다.
연기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던 그들에게 어지간히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박신양은 그 답을 스스로 깨닫게끔 하기 위해 본인을 내던져 연기에 도전해보고 실패해보고 그 과정을 온전히 느껴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되묻습니다. '스스로의 연기가 믿겨지냐고, 무대에서 살아있냐고.'
그리고 한 제자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은 장수원, 왕년의 유명 아이돌이지만 이제는 어색한 로봇연기로 기억되는 배우입니다. 1, 2화에서 계속 장수원은 갑갑할 정도로 본인의 틀에 자기를 가두고 변화를 거부하며 스스로의 능력을 의심하고 불안해합니다.
급기야 2화 끝부분, 스스로 설득되지 않는 본인의 연기를 참지 못하고 주저앉고 맙니다.
하지만 박신양은 오히려 '실패해도 된다.', '믿어지지 않았기에 그만 둔 솔직한 점이 마음에 든다.'는 따뜻한 말을 건넵니다. 이 말에 감정 없는 로봇만 같았던 장수원은 가슴 속에 무언가 무너져 내린 듯, 눈물을 쏟아내 버립니다.
그리고 용기 내어 연기를 끝마치고 한 인터뷰에서 전 숨이 멎을 뻔한 기적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그 동안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따뜻하고 생생한 표정의 장수원이 인터뷰를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내게 감정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그걸 끌어내준 선생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는 그를 보고 저마저도 행복감에 빠져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어떤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 기적적이고 감동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장수원에게 감정이입해 눈물을 흘리고 만 것은 차주현 선생님과 만나기 전의 저도 장수원과 똑같이 감정을 억누르고 내 틀 안에서 고독함을 벗 삼아 살았고 제 존재를 항상 의심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배우학교를 몇 번이고 돌려보고 박신양에게 매료되고 만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하게끔, 느끼게끔 도와주고 절 믿고 이끌어주시던 차주현 선생님과의 지난 3개월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럼 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상담받기 전, 전 살아있다는 것에 어색함을 느꼈습니다.
아무와도 교감하지도, 소통하지도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고 번번이 실패하고만 마는 인간관계, 연애로 좌절감에 짓눌려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제 모습을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제 발목이 묶여있었지만 애써 과거 기억을 잊고 절 모르는 새로운 사람, 새로운 곳에서는 달라질 거라는 허황된 희망과 그럴싸한 명문대학교 학벌과 꾸며낸 이미지로 만든 가면을 쓰고 절 기만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가면은 무겁게 저를 짓눌렸고 가면과 절 구분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상상 속 멋진 절 부정하는 모든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습니다.
내면의 굶주림, 채워지지 않는 욕심과 애정은 자기 계발서적을 탐닉하며 저는 어떻게든 노력하고 있다고 스스로 세뇌하거나 다른 한편으로는 외로움과 고독함이 가득한 셰임, 타인의 삶, 버드맨, 인디에어 등의 영화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 등의 소설 속 저 축축한 슬픔 속에 절 적시고야 안식을 취했습니다.
헤엄치지 않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지느러미를 움직일 수밖에 없는 상어처럼 전 멈추는 순간 죽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머릿속으로 ‘자살을 하면 안 돼.’ 라는 생각을 해 자살을 실행하지 않았을 뿐, 저에게 달리 생의 의지는 없었습니다.
다만, ‘뭐든 열심히 하고 배워보고 그럼 나아지겠지!’ 란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이 절 지탱시켰습니다. 그리고 그 팽팽했던 끈은 어느 날 예고 없이 끊어졌습니다.
첫 만남에선 절 너무 좋아해주고 뭔가 교감이 되는 듯 했던 여자분이 두 번째 만남에서 절 말도 안 되게 차갑게 대하며 매몰차게 절 떠나버렸습니다. 그러자 그 동안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았던 내 안의 모순과 좌절감이 쓰나미처럼 저에게 쏟아졌습니다.
‘이렇게 노력해도 안 된다.’, ‘난 안 되는 놈이다.’ 란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습니다.
그동안 절 그나마 살아오게 해왔던 미약한 것이 무너지며 희망이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이런 공허하고 허무한 인생을 살 바에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란 생각이 제 머리에 가득 찼습니다.
전 부평구청 사거리 옆 버스정류장에 앉아 몇 분간, 아니 몇 십분 간 차가운 아스팔트 찻길과 빠르게 지나가는 주황색 불빛만을 멍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목 끝까지 차올라 익사할 것만 같은 공허함 속에 잠겨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익사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힘을 짜냈습니다. 저에게 한 번 더,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마치 동아줄이라도 잡는 심정이었습니다.
인터넷 검색으로 상담센터를 찾아 평가가 좋아 보이는 한 곳에 바로 전화를 걸어 다음날 예약을 잡고 나서야 비로소, 전 숨을 쉴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전 제가 버스정류장에 막차가 올 때까지 앉아 있었단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2015년 10월의 어느 차가운 밤, 전 죽음의 문턱 앞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3개월의 상담 기간, 전 저를 내려놓고 차주현 선생님을 전적으로 믿고 말씀에 따르며 저를 찾으려 발버둥 쳤습니다. 상담 과정은 말 그대로 제가 쥐고 놓지 않으려던 가면을 내던지고 제 진짜 얼굴과 제 삶을 되찾는 과정이었습니다.
(웃긴 건 ‘배우학교’에서 자신의 내면과 연기에 대한 이해 없이 연기 잘하는 법을 배우러 왔던 7명의 배우들처럼 저도 상담에서 제 내면을 알려하기 보단 그저 제가 상상하던 제 모습처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러 왔던 것입니다. 저에게 삶의 방법은 절대 벗겨지는 않는 가면을 쓰는 것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 당시 제가 참 위험하고 무서운 생각을 했지만 동시에 너무 안쓰럽고 불쌍한 느낌이 듭니다..)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일상생활을 병행하며 하루 종일 내 감정을 느껴 보려하고 기록하며 느껴지지 않는 감정의 빈자리를 더듬는 일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는 것 마냥 지치고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도중 제가 믿던 이들에게 끔찍한 배신도 당하고 제 방어기제를 벗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자
온 몸에 열이 나고 며칠 간 악몽을 꾸는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였으면 결코 시도하지도 못했을 이 모든 것들의 제 뒤에는 든든하게 선생님이 있었기에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실패하고 번민했지만 분명 옳은 길을 가고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제 마음과 직면하게끔 가끔은 매몰차게 절 막대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마치 저는 알속에 들어가 있는 새와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새가 바깥세상으로 나갈 충분한 힘을 기를 만큼 외부로부터 보호해주는 동시에 새를 가둬두고 있는 껍질을 스스로 깨고 나와야 하는 알처럼 선생님은 제가 실패에 지쳐서 나가떨어지지 않게 보호해주는 동시에
과제와 시련을 줘 제 힘으로 문제를 깨닫고 극복해나가게끔 하셨단 생각이 듭니다. 덕분에 전 3개월 동안 더 건강한 멘탈과 자신감을 얻고 조금씩 제 욕망과 감정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그 중, 몇 개를 이야기하자면 덕분에 그동안 절 괴롭히던 큰 트라우마와 마주했습니다.
고등학교 때 은따 (일종의 왕따)를 당했다고 생각해서 졸업하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지내도 불편한 마음과 함께 이 녀석들에게 성공한 모습으로 복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상담 후반부, 용기 내 대화해보자 제가 만든 오해와 상상이 대부분이었고 반에서 엄석대 마냥 대장행세를 하던 친구가 소심하고 겁이 많은 친구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꾹꾹 제 마음을 눌러 고백하지 못했던 첫사랑과 만났습니다. 그 땐, 제 마음을 감당할 자존감이 없어 그 친구를 피하고 혼자 먼발치에서 지켜보며 마음 아파했지만 지금은 제가 고시준비 중인 그 친구에게 맛있는 밥도 사주고 그 때 표현 못했던 사랑을 애정 어린 관심이나 칭찬 같이 다른 형태로나마 표현했습니다.
아마 모르실겁니다.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이는 이것들이 뱃속에 납덩이가 들어가 있는 것 마냥 얼마나 절 힘들고 무겁게 만들었는지. 제가 느낀 상담은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는 수술이라기보다는 실패와 도전, 번민을 허락하는 '배우학교'에 입학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또한 그윽한 눈으로 제 감정과 생각, 가능성마저 보고 있는 것만 같은 선생님과 함께 제가 가보지 못한 영역을 탐험하는 여행에 가까웠습니다.
거인의 어깨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었다는 표현도 감히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한 수레의 자기 계발서적을 읽고 호주든 유럽이든 여행 다녀오고 해도 저란 인간과 제가 가진 틀은 쉽게 바뀌지 않았지만 직접 온 몸을 부딪쳤던 이 3개월 동안 어느 때보다 자유롭고 충만하게 저를 탐구하고 인생과 인간, 여러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저는 이 특별했던 경험 이후에 제 두 발로 살아갈 건강한 힘을 얻게 되었다고 느낍니다. 상담해주신 내용 이외에도 직업적, 사회적으로도 한걸음 나아졌고 삶은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이야기입니다. 이건 여러분과 저만이 공유하는 비밀입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 글을 읽어보신 분께서 만약 저를 직접 보셔도 절 못 알아보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저는 상담 전의 저와 비교했을 때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겉모습이 달라진 건 아니지만 제가 마음속으로 그리는 제 모습은 이젠 훨씬 커다랗고 자유롭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전 계속 번민하고 고민에 빠집니다. 가끔은 우울하고 슬프기도 가끔은 행복하고 즐겁고 그렇습니다. 오히려 제가 그동안 신경 쓰지 않던 삶의 영역에서 불쑥불쑥 문제가 튀어나옵니다.
하지만, 제가 3개월 간 얻은 경험은 제게 남아 항상 저에게 힘을 줍니다. 제가 얻은 것은 가벼워진 짐이 아니라 보다 두터운 어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