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기관에서 실패한 내담자 상담] 공황장애의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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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00
조회 981회
작성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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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상담센터에 제 발로 찾아오게 된 이유는 유학을 결정하게 되면서
준비하는 도중에 가슴이 옥죄오며 답답하고 죽을것 같은
공포와 스트레스를 심하게 많이 받아 지하철 안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심리상담과 한의학을 전공했던 이모에게 찾아갔고 내가 공황장애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모는 나에게 한약을 먹으면 되고 상담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한약을 먹으면서도 내 마음속에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었다.
이런 저런 안 좋은 상황들을 내가 만들어냈고 그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취업에 성공할수 있을까?
혹시 출근하러 가는 길에 긴장이 너무 심해서 전처럼 지하철에서 쓰러지면?
그래서 아무도 구해주지 않으면?
그게 내 마지막이라면?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마음의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게 되었다.
첫날은 초기면접 상담을 마치고 몇일후 에 심리검사를 통해 나의 증세를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수치가 좋지 않게 나왔다.
처음 차주현 대표님에게 배정을 받고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솔직히 잘못 왔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상이 무서웠고 말투도 딱딱했고 중간 중간 심하게까지 하니 정말 상담가가 맞나? 란 의심까지 들기도 했었다.
왜냐면 내가 이전에 만났던 심리상담 선생님과의 모습과는 딴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두려움을 없애주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나의 편견이었다는 걸 알았다.
상담사는 모두 친절해야 한다는 편견.
하지만 매주 상담을 받으면서 차츰 불안함이 사라졌고
정말 뜻 깊고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많이 배웠고 느꼈다.
내가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난 것이다.
그냥 잠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쓰러졌을 뿐인데
내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내 꼬리표처럼 나는 달고 다니려고 했다.
이 모든 세상은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만들어 진 것이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등 모든게 사람들이 만들어낸 병일뿐이다.
차주현 대표님이 이 세상엔 작명사가 많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정신병원에 가서 의사가 나에게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면
나는 그 정신분열증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결정짓는다면 나는 그 틀에 갇혀 지내지 않게 된다.
나는 앞으로 틀에 맞춰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이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모든 것을 보고해야 했고
엄마 손 안에만 있어야했고 엄마가 위험하다며 나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불안과 두려움이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이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주변에서 나에게 준 말들과 생각들의 집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어릴적 부터 용기를 주는 말과 자신감을 키워주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멋질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담을 하러 오기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를 점검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어 뜻 깊다.
그룹치료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여유롭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여유롭지 못하고.
나부터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수록 나만 힘들어지고,
예전의 나와 성장한 현재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항상 나는 무조건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았고
엄마의 칭찬을 받으려고 엄마를 만족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엄마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들어야만 했고
정답을 꼭 맞춰야만 했고 나는 완벽해야만했다. 그래서 실수를 하면 안됐다.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 시선이 두려웠고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내 인생이다.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생각을 싫어해도 그건 내 생각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상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내 생각을 맞춰주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상담을 하면서 가장 고치고 싶었던 점 은 심하게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차주현 대표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부딪혀보고 책도 읽고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는 지금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에 나는 없으며 이미 지나 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5분 뒤에라도 아파트가 무너져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5분뒤에 죽더라도 나는 먹던 밥을 계속 먹을 것이고 하던 일을 계속 할 것이다.
예전처럼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로 죽음을 맞이하기는 정말 싫다.
죽어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죽는 게 속 편하고 안 억울할 것이다.
모든 공포는 나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차주현 대표님이 보여준 [공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쓰러지고 나서 다시 지하철을 타기를 꺼렸다.
그 이유는 내가 그 곳에서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건강상의 문제였고
지하철 자체가 상어도 아니고 무섭고 공포스러울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모두 내가 만들어낸 공포 였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서 원장님이 알려주신 불안한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이용하면서
내마음을 차분하게 다루려 노력했다.
지금도 아주 조금의 불안함은 남아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시 지하철을 탈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두려움은 경험할수록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세상은 그렇게 두려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서 그 부정적인 것을 크게 생각하고 크게 느끼고 크게 받아들였다.
이제 상담을 한 회차 더 받을 텐데 많이 기대가 된다.
내가 이 기회를 통해서 지금보다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준비하는 도중에 가슴이 옥죄오며 답답하고 죽을것 같은
공포와 스트레스를 심하게 많이 받아 지하철 안에서 쓰러진 적이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서 심리상담과 한의학을 전공했던 이모에게 찾아갔고 내가 공황장애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
이모는 나에게 한약을 먹으면 되고 상담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만
한약을 먹으면서도 내 마음속에 불안함은 가시지 않았었다.
이런 저런 안 좋은 상황들을 내가 만들어냈고 그 생각을 끊을 수가 없었다.
예를 들자면 내가 취업에 성공할수 있을까?
혹시 출근하러 가는 길에 긴장이 너무 심해서 전처럼 지하철에서 쓰러지면?
그래서 아무도 구해주지 않으면?
그게 내 마지막이라면? 이런 부정적인 상황에 대한 상상이 끊이지 않았고
나는 다가오지 않을 미래에 불안함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래서 이 마음의 불안을 없애고 싶어서 심리상담센터에 방문하게 되었다.
첫날은 초기면접 상담을 마치고 몇일후 에 심리검사를 통해 나의 증세를 확인하게 되었다.
모든 수치가 좋지 않게 나왔다.
처음 차주현 대표님에게 배정을 받고 상담을 받으러 간 날 솔직히 잘못 왔나?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인상이 무서웠고 말투도 딱딱했고 중간 중간 심하게까지 하니 정말 상담가가 맞나? 란 의심까지 들기도 했었다.
왜냐면 내가 이전에 만났던 심리상담 선생님과의 모습과는 딴 판이었기 때문이다.
이 역시도 두려움을 없애주려는 것이었는데, 지금은 나의 편견이었다는 걸 알았다.
상담사는 모두 친절해야 한다는 편견.
하지만 매주 상담을 받으면서 차츰 불안함이 사라졌고
정말 뜻 깊고 어디서도 배울 수 없는 것을 많이 배웠고 느꼈다.
내가 ‘공황장애’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끝난 것이다.
그냥 잠시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쓰러졌을 뿐인데
내가 공황장애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내 꼬리표처럼 나는 달고 다니려고 했다.
이 모든 세상은 사람들의 생각에 의해 창조된 것이고 만들어 진 것이다.
‘공황장애’ ‘불안장애’ 등등 모든게 사람들이 만들어낸 병일뿐이다.
차주현 대표님이 이 세상엔 작명사가 많다고 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뜻을 알게 되었다.
정신병원에 가서 의사가 나에게 정신분열증이라고 하면
나는 그 정신분열증이라는 틀에 맞춰 살아가게 된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결정짓는다면 나는 그 틀에 갇혀 지내지 않게 된다.
나는 앞으로 틀에 맞춰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의 원인이 어릴 적부터 엄마에게 모든 것을 보고해야 했고
엄마 손 안에만 있어야했고 엄마가 위험하다며 나에게 두려움을 심어주었기 때문에
내가 불안과 두려움이 커졌다는 것을 알게 됐다.
나는 아직 경험해 보지도 못했다.
이 모든 두려움과 불안은 주변에서 나에게 준 말들과 생각들의 집합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만약 어릴적 부터 용기를 주는 말과 자신감을 키워주는 말을 들었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더 멋질까 생각하게 되었다.
이렇게 상담을 하러 오기까지 정말 힘들었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나를 점검할 수 있었던 시간이 되어 뜻 깊다.
그룹치료를 하면서 나 자신에게 여유롭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여유롭지 못하고.
나부터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할수록 나만 힘들어지고,
예전의 나와 성장한 현재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어렸을 적부터 항상 나는 무조건 엄마의 기준에 맞춰 살았고
엄마의 칭찬을 받으려고 엄마를 만족시키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엄마 외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칭찬을 들어야만 했고
정답을 꼭 맞춰야만 했고 나는 완벽해야만했다. 그래서 실수를 하면 안됐다.
그래서 더욱더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 그 시선이 두려웠고 신경 쓰였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내 인생이다.
아무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고 모든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어떤 사람이 나의 생각을 싫어해도 그건 내 생각이다.
너는 너고 나는 나다.
내가 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이상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조건 내 생각을 맞춰주지 않을 것이고
사람들의 시선과 비판이 두려워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상담을 하면서 가장 고치고 싶었던 점 은 심하게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이었다.
차주현 대표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부딪혀보고 책도 읽고 하면서 확실하게 깨달은 것이 있다.
걱정한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나는 지금 현재에만 존재할 뿐이다.
과거에 나는 없으며 이미 지나 왔고 미래는 오지 않았다. 오지 않을 수도 있다.
당장 5분 뒤에라도 아파트가 무너져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5분뒤에 죽더라도 나는 먹던 밥을 계속 먹을 것이고 하던 일을 계속 할 것이다.
예전처럼 걱정만 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로 죽음을 맞이하기는 정말 싫다.
죽어도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살다가 죽는 게 속 편하고 안 억울할 것이다.
모든 공포는 나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다.
차주현 대표님이 보여준 [공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모든 두려움과 공포는 내가 만들어낸 생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하철에서 쓰러지고 나서 다시 지하철을 타기를 꺼렸다.
그 이유는 내가 그 곳에서 공포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한 건강상의 문제였고
지하철 자체가 상어도 아니고 무섭고 공포스러울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 모두 내가 만들어낸 공포 였다.
그래서 지하철을 타면서 원장님이 알려주신 불안한 마음에 다가가는 법을 이용하면서
내마음을 차분하게 다루려 노력했다.
지금도 아주 조금의 불안함은 남아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을 알고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시 지하철을 탈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리고 두려움은 경험할수록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내가 생각한 것 보다 세상은 그렇게 두려운 곳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 혼자서 그 부정적인 것을 크게 생각하고 크게 느끼고 크게 받아들였다.
이제 상담을 한 회차 더 받을 텐데 많이 기대가 된다.
내가 이 기회를 통해서 지금보다 더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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