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와 열등감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삶을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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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00
조회 844회
작성일 2016-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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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다.
3개월 뒤에는 어떤 내 모습이 있을까 기대하며 시작됐던 상담이. 8월 9월 10월 11월. 벌써 마지막 회기만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회기를 남겨두고, 갑작스런 병원 입원으로 인해 마음도, 정신도 사실 많이 흔들렸었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고 입원해있는 동안 사실 많이 힘들기 도 했다.
그치만 여태까지 받았던 상담을 생각하니 다시 일어나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퇴원했고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아직도 몸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며 다음 주 마지막 회기 예약도 잡아두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모습은 참 많이 불안정했다.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나 자신을 지탱하는 자존감도 없었으며, 망상도 심했으며 편집증적인 모습 또한 있었다. 열등감과 두려움에 항상 숨기만 하고 남들에게 맞춰가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나 자신 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떤지 직시하지 못했으며, 그저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와 열등감에 싸여 있었다.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내 스스로가 찾아서 방문한 이곳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왜 아팠는지를 알았다. 아버지와의 갈등. 폭력. 불안. 망상. 어머니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고. 어린 나는 그렇게 성인이 되어버렸다.
괜찮은 줄 알았다. 잘 자란줄 알았다.
상처도 다 극복한 줄 알았지만 어렸던 나는 여전히 피해의식과 어둠속에 있었고 그렇게 성인이 된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두렵고 자존감도 없고 순응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난 커버렸다. 작았던 나의 상처와 아픔 두려움 피해의식이 가득했던 나무는 어느새, 너무 커져서 도저히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나무가 되버렸다.
상담을 받으며 나 자신을 찾는 연습을 했고 내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 내가 아팠는지 부모님의 역할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았고. 나만 힘들고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냥 내가 지켜줘야 될 것 만 같고 항상 책임져야 될 것 같던 어머니는 사실 나보다 훨신 강하고 오히려 내가 기대고 있는 존재였고. 나는 그냥 트라우마에 싸여 한탄만 하는 무력하고 한심한 사람이었다.
항상 미워하며 미워할 수 없던 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너무 가여운 사람이었고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안하고 다가가지 못했던 건 내 자신이었다.
정말 모든 걸 다 알게 되버렸는데 이제는 다 알게 되버려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래서 더 이상 숨을 구멍도 도망칠 수도 없고 맞서야 되는데...
나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지속되는 상담 속에서도 그런 나 자신을 회피하려고만 했고 두려움으로 인해 뒷걸음질 만 쳤다.
안일함과 여태까지 살아왔던 생활패턴에 젖어. 이제 정말 변해야 되는 걸 알면서도 변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숨고 또 숨었다.
그치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짐 같았던 부모님은 사실 나한테는 경제적 버팀목이었고 언제든지 내가 도망치고 싶음 내 앞에 서서 나를 가려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나무였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더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온전히 독립 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자, 모든 게 다 뚜렷해졌다.
나는 이제 한발을 내딛었다. 이제 나는 남들에 눈에 나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 큰 존재라는 것을 알았고, 나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왜 좀 더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는지.. 절실해야 정말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꼭 멋진 사람이 될 것이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며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한발 앞으로 다가갈수 있는... 도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리고 나는 내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동안 많이 아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3개월 뒤에는 어떤 내 모습이 있을까 기대하며 시작됐던 상담이. 8월 9월 10월 11월. 벌써 마지막 회기만 남겨두고 있다.
마지막 회기를 남겨두고, 갑작스런 병원 입원으로 인해 마음도, 정신도 사실 많이 흔들렸었다.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고 입원해있는 동안 사실 많이 힘들기 도 했다.
그치만 여태까지 받았던 상담을 생각하니 다시 일어나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퇴원했고 지금은 일상생활을 하고 있고 아직도 몸 컨디션이 좋은 건 아니지만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살기 위해 노력하며 다음 주 마지막 회기 예약도 잡아두고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모습은 참 많이 불안정했다. 생각은 끝도 없이 이어졌고 나 자신을 지탱하는 자존감도 없었으며, 망상도 심했으며 편집증적인 모습 또한 있었다. 열등감과 두려움에 항상 숨기만 하고 남들에게 맞춰가며 살아왔다.
그랬기에 나 자신 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현재의 내 모습이 어떤지 직시하지 못했으며, 그저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 와 열등감에 싸여 있었다. 많이 아팠고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기 위해 내 스스로가 찾아서 방문한 이곳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왜 아팠는지를 알았다. 아버지와의 갈등. 폭력. 불안. 망상. 어머니가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항상 나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고. 어린 나는 그렇게 성인이 되어버렸다.
괜찮은 줄 알았다. 잘 자란줄 알았다.
상처도 다 극복한 줄 알았지만 어렸던 나는 여전히 피해의식과 어둠속에 있었고 그렇게 성인이 된 나도 마음 한구석에는 두렵고 자존감도 없고 순응하기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난 커버렸다. 작았던 나의 상처와 아픔 두려움 피해의식이 가득했던 나무는 어느새, 너무 커져서 도저히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나무가 되버렸다.
상담을 받으며 나 자신을 찾는 연습을 했고 내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했다. 왜 내가 아팠는지 부모님의 역할이 나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았고. 나만 힘들고 아픈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냥 내가 지켜줘야 될 것 만 같고 항상 책임져야 될 것 같던 어머니는 사실 나보다 훨신 강하고 오히려 내가 기대고 있는 존재였고. 나는 그냥 트라우마에 싸여 한탄만 하는 무력하고 한심한 사람이었다.
항상 미워하며 미워할 수 없던 나의 아버지는. 어쩌면 너무 가여운 사람이었고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조차 안하고 다가가지 못했던 건 내 자신이었다.
정말 모든 걸 다 알게 되버렸는데 이제는 다 알게 되버려서 나 자신에 대해서도 그래서 더 이상 숨을 구멍도 도망칠 수도 없고 맞서야 되는데...
나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과 지속되는 상담 속에서도 그런 나 자신을 회피하려고만 했고 두려움으로 인해 뒷걸음질 만 쳤다.
안일함과 여태까지 살아왔던 생활패턴에 젖어. 이제 정말 변해야 되는 걸 알면서도 변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계속 숨고 또 숨었다.
그치만 시간이 흐를수록 내게 짐 같았던 부모님은 사실 나한테는 경제적 버팀목이었고 언제든지 내가 도망치고 싶음 내 앞에 서서 나를 가려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나무였다는 것을.
그래서 내가 더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사실 나는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온전히 독립 한게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자, 모든 게 다 뚜렷해졌다.
나는 이제 한발을 내딛었다. 이제 나는 남들에 눈에 나 자신을 맞출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고, 부모님은 나에게 너무 큰 존재라는 것을 알았고, 나 자신을 점검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도.
왜 좀 더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는지.. 절실해야 정말 변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나는 꼭 멋진 사람이 될 것이고 항상 행복한 사람이며 두려움을 가지지 않고 한발 앞으로 다가갈수 있는... 도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물론 지금도 현재 진행중이다! 그리고 나는 내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한다. 그동안 많이 아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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