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번의 상담만으로 조현병 약을 끊고 새로운 삶과 기회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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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고00
조회 837회
작성일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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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저는 겁이 많고 소심한데다가 이사도 많이 하고
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왕따를 당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족에게 폐를 끼칠까봐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계속 공무원영어를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제 앞에서 그린 그림을 찢어서 버리셨고
그 모습을 보고 미술의 꿈을 접었습니다.
처음에 대학교 1학년 때 환청 비슷한 증상으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제가 물건을 던지거나 화를 내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작은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았는데
그 약을 먹고 부작용으로 근경련이 일어나면서 쓰러져 큰 병원에 실려 갔었고
거기서 (병명은 길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급성환각증상 약으로
조현병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더 우울해지고 나른해지고 집중도도 떨어지고
살은 30키로가 쪘으며, 화가 자주 나고 많이 울기도 하며,
밖에 나가면 누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주변에 조현병이라고 알렸으나,
가족과 친구들이 이해는 해줬지만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을 끊으라고도 하고 신기하다고도하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계속 간질로 쓰러지셔서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가 자주 왔고 그걸로 저는 또 울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몸에 자해도 했습니다. 그 후로 증상이 계속 지속되는 중에
간호대학교 4학년까지 다 마치고 간호사면허증을 받고 졸업하였습니다.
본가인 충남 천안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께서 계속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하셨고
3일간 울고 나서 어머니에게 어쩔 수 없다고 말 하며
노량진으로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노량진은 지옥이었습니다.
공부와 운동도 계속해서 병행하고, 면접연습도 하고,
게다가 주변의 음식점들은 모두 위생이 엉망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쭉 하면서 너무 성적을 올리기 힘들어 독서실에서 숨 죽여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어떤 때에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잠자기 전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화가 확 나는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고시원 안에서 물건을 던지기도하고
공부하다가 화가 나서 책을 덮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7월 말쯤에 어느 순간에 정신이 확 돌아버리면서
고시원에서 나오지 않게 되고 방전된 것 마냥 가만히 있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제일 심했던 것은 화를 엄청 냈습니다.
분노로 소리를 계속 지르고, 방바닥을 긁고, 침대위에서 뛰기도 하고,
가위로 손가락에 피를 내서 바닥에 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 경찰과 소방관이 고시원 주인의 신고를 받고 들어왔고
“약했나, 왜 저러지”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가자고 했는데
제가 “안 나가!!!” 하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은 동생과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오시자마자 제가 “너희들이 나 힘들게 했잖아!!!” 라고 소리를 지르고,
어렸을 적에 저를 때린 동생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뒤에 부모님께서 나가자고 회유하셨고, 저는 부모님을 피해서 도망갔다가
다시 잡혀서 고시원에 왔고 구석에서 너무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떨다가
다시 본가로 왔습니다.
다른 병원에도 갔는데 조현병 약을 주고 일상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환각증상 비슷한 것이 계속되었고, 계속 고통 받으며 울고 화내기를 반복하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 심리상담센터에 왔습니다.
처음에 차주현 대표님께서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제 편을 들어주셔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되게 좋았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제가 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고,
자기감정도 표현하라고 하시며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을 끊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첫 상담을 마쳤습니다.
2번째 상담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셔서
옛날에 힘들었던 기억 속의 제 자신을 그렸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셔서
거울을 보며 괜찮다고 제 자신에게 외치면서 계속 울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저에게 자기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귀를 열고 들어야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3번째 상담에서는 갑자기 복싱을 하자고 하셔서 복싱을 했는데,
처음에는 “어어” 하면서 맞다가 화가 나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계속 화내며 울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무서워 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화가 많으면 풀어내야하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제가 감정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저에게 조현병이 아닐 거라고, 오진인 경우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의아함을 느껴서 제 간호전공서적을 뒤져보니 전혀 아니었고
이때부터 약을 버리고 끊었더니 정말로 머리가 맑고 잠도 잘 오고
그제 서야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4번째 상담 때는 아버지가 또 간질로 쓰러지셔서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그 우울함은 걱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유전될까봐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은 누구나 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되게 감명 깊었고 동영상으로 슬픔에 대한 교육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사람은 울고 싶을 때 울어야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면서,
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예술 쪽이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예술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가 예전에 그림을 찢으셨던 것에 대해 사과 받고 울면서
25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속 깊은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5번째 상담 때에는 꾸미는 것이 어색했지만 꾸미고 갔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러한 직업은 어떠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기쁨에 대한 상담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웃고 웃음을 짓는 것은 실제로 많은 의학적 도움이 되며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림도 자유롭게 여러 가지의 색깔을 쓰면서 놀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차주현 대표님께서 집단상담에 오라고 하셔서 갔었는데
칭찬하는 법, 화내는 법, 행동하는 법,
감정이 상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나 혼자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여러 고통을 가지고 있구나,
마치 모두의 인생이 다 다른 영화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화내는 시간에 화도 많이 내서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6번째 상담 때에는 그림 쪽에서
3D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대표님께서 여러 가지 방면도 있고 돈이 있어야한다고
진로를 딱 단정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직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이번에는 공포에 대한 상담을 하였는데, 공포는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에
천천히 노출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공포가 생각보다는 별게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림도 이젠 자유롭게 그리고, 꾸미는 것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것입니다.
6번의 상담만으로 오랫동안 복용했던 조현병 약을 끊었으며,
저에게 새로운 삶과 기회를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또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왕따를 당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가족에게 폐를 끼칠까봐 왕따를 당한다는 사실을 숨기고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계속 공무원영어를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취미가 있었는데,
아버지가 제 앞에서 그린 그림을 찢어서 버리셨고
그 모습을 보고 미술의 꿈을 접었습니다.
처음에 대학교 1학년 때 환청 비슷한 증상으로 저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고
눈앞에 제가 물건을 던지거나 화를 내는 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근처의 작은 병원에 가서 약을 받았는데
그 약을 먹고 부작용으로 근경련이 일어나면서 쓰러져 큰 병원에 실려 갔었고
거기서 (병명은 길어서 기억이 잘 안 나지만) 급성환각증상 약으로
조현병 약을 처방해 주었습니다.
그 후로 더 우울해지고 나른해지고 집중도도 떨어지고
살은 30키로가 쪘으며, 화가 자주 나고 많이 울기도 하며,
밖에 나가면 누가 저를 쳐다보는 것 같이 느껴졌습니다.
주변에 조현병이라고 알렸으나,
가족과 친구들이 이해는 해줬지만 이상하게 보았습니다.
을 끊으라고도 하고 신기하다고도하고 걱정도 많이 했습니다.
그 와중에 아버지가 계속 간질로 쓰러지셔서
어머니가 울면서 전화가 자주 왔고 그걸로 저는 또 울고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온몸에 자해도 했습니다. 그 후로 증상이 계속 지속되는 중에
간호대학교 4학년까지 다 마치고 간호사면허증을 받고 졸업하였습니다.
본가인 충남 천안 집에 오자마자 아버지께서 계속 공무원 준비를 하라고 하셨고
3일간 울고 나서 어머니에게 어쩔 수 없다고 말 하며
노량진으로 무작정 올라갔습니다.
노량진은 지옥이었습니다.
공부와 운동도 계속해서 병행하고, 면접연습도 하고,
게다가 주변의 음식점들은 모두 위생이 엉망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쭉 하면서 너무 성적을 올리기 힘들어 독서실에서 숨 죽여 울고,
자기 전에도 울고, 어떤 때에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잠자기 전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화가 확 나는 증상이 심해졌습니다.
고시원 안에서 물건을 던지기도하고
공부하다가 화가 나서 책을 덮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7월 말쯤에 어느 순간에 정신이 확 돌아버리면서
고시원에서 나오지 않게 되고 방전된 것 마냥 가만히 있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제일 심했던 것은 화를 엄청 냈습니다.
분노로 소리를 계속 지르고, 방바닥을 긁고, 침대위에서 뛰기도 하고,
가위로 손가락에 피를 내서 바닥에 칠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루 만에 경찰과 소방관이 고시원 주인의 신고를 받고 들어왔고
“약했나, 왜 저러지”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나가자고 했는데
제가 “안 나가!!!” 하고 소리를 질렀고, 결국은 동생과 어머니와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오시자마자 제가 “너희들이 나 힘들게 했잖아!!!” 라고 소리를 지르고,
어렸을 적에 저를 때린 동생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도 말했습니다.
그 뒤에 부모님께서 나가자고 회유하셨고, 저는 부모님을 피해서 도망갔다가
다시 잡혀서 고시원에 왔고 구석에서 너무 무섭다고 살려달라고 떨다가
다시 본가로 왔습니다.
다른 병원에도 갔는데 조현병 약을 주고 일상생활을 하라고 했습니다.
환각증상 비슷한 것이 계속되었고, 계속 고통 받으며 울고 화내기를 반복하다가
자포자기 심정으로 이 심리상담센터에 왔습니다.
처음에 차주현 대표님께서 부모님 이야기를 듣고 제 편을 들어주셔서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되게 좋았었습니다.
상담을 하면서 저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면서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제가 제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아야 하고,
자기감정도 표현하라고 하시며 자기 자신을 알아야한다고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약을 끊어야 된다고 하시면서 첫 상담을 마쳤습니다.
2번째 상담에서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라고 하셔서
옛날에 힘들었던 기억 속의 제 자신을 그렸고,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라고 하셔서
거울을 보며 괜찮다고 제 자신에게 외치면서 계속 울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저에게 자기 자신이 말하는 것을
귀를 열고 들어야한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3번째 상담에서는 갑자기 복싱을 하자고 하셔서 복싱을 했는데,
처음에는 “어어” 하면서 맞다가 화가 나서 눈물이 터져버렸습니다.
바닥에 엎드려 계속 화내며 울었습니다.
차주현 대표님은 무서워 하지 말고 싸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화가 많으면 풀어내야하고, 원래 그런 것이라고.
제가 감정 컨트롤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저에게 조현병이 아닐 거라고, 오진인 경우가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에 의아함을 느껴서 제 간호전공서적을 뒤져보니 전혀 아니었고
이때부터 약을 버리고 끊었더니 정말로 머리가 맑고 잠도 잘 오고
그제 서야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었습니다.
4번째 상담 때는 아버지가 또 간질로 쓰러지셔서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그 우울함은 걱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유전될까봐
그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사람은 누구나 다 이기적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 말이 되게 감명 깊었고 동영상으로 슬픔에 대한 교육영상을 보여주셨는데
사람은 울고 싶을 때 울어야하고,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며,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림을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그리면서,
아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예술 쪽이었구나 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와 제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예술 쪽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고,
아버지가 예전에 그림을 찢으셨던 것에 대해 사과 받고 울면서
25년 만에 처음으로 아버지와 속 깊은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5번째 상담 때에는 꾸미는 것이 어색했지만 꾸미고 갔고,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러한 직업은 어떠냐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기쁨에 대한 상담을 하였습니다.
사람이 웃고 웃음을 짓는 것은 실제로 많은 의학적 도움이 되며
사람이 사는데 꼭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그림도 자유롭게 여러 가지의 색깔을 쓰면서 놀듯이 그림을 그렸습니다.
차주현 대표님께서 집단상담에 오라고 하셔서 갔었는데
칭찬하는 법, 화내는 법, 행동하는 법,
감정이 상하지 않게 대화하는 법을 배워서 매우 유익했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나 혼자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라
남들도 다 여러 고통을 가지고 있구나,
마치 모두의 인생이 다 다른 영화 같다고 느껴졌습니다.
저는 화내는 시간에 화도 많이 내서 마음이 후련해졌습니다.
6번째 상담 때에는 그림 쪽에서
3D나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는 것이 어떠냐고 물어보았고,
대표님께서 여러 가지 방면도 있고 돈이 있어야한다고
진로를 딱 단정 짓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직업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이번에는 공포에 대한 상담을 하였는데, 공포는 과거의 안 좋았던 기억에
천천히 노출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공포가 생각보다는 별게 아니라고 느껴졌습니다.
그림도 이젠 자유롭게 그리고, 꾸미는 것도 연습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에게 맞는 직업을 찾고,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것입니다.
6번의 상담만으로 오랫동안 복용했던 조현병 약을 끊었으며,
저에게 새로운 삶과 기회를 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